Francosie Sagan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국가가 왜 간섭하느냐.
내가 내 몸 버리겠다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은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이다.
그녀는 과거 마약 소지 혐의로 공항에서 체포되었고, 당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
그리고 이 인터뷰가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장편소설의 책 제목으로 인용되었다.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나는 나를 파괴 할 권리가 있다>다.
#1
'나'는 항상 의뢰인, 고객을 찾아 미술관을 가거나 신문을 유심히 본다.
혹은 그날의 주식 상황과 경제면을 살펴보며 보내기도 한다.
갑자기 융성했던 회사가 최근 부도 위기로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에 주목하거나,
주식 가격의 등락을 보며 잠재 고객들을 파악한다.
그의 고객 찾기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무슨 기준인지 좀잡을 수 없으나, 그에게는 확고한 고객 선정 기준과 철학이 있다.
# 2
그의 고객은 바로 '죽고자 하는 이'다.
그는 생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며
의뢰가 끝나면 여행을 떠나 고객에 대한 글을 쓴다.
"삶의 끝에서 내가 행할 수 있는 마지막 권리는
_나를 파괴할 권리이다."
#3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아마도 유디트를 닮은 '세연'일 것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가정, 가출 등의 배경으로 업소를 다녔었고, 이런 삶에 지루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그녀가 '나'와 죽는 방법을 상의할 땐 마치 여행지를 고민하는 여행자마냥 들떠서 지루함 따윈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
그때 유디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그녀는 보여주고 있었다. 생기. 그녀는 나와 만난 후 처음으로 얼굴에 생기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신이 나는 거 있죠. 내게 인생이란 제멋대로인 그런 거였어요. 언제나 내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내가 가 있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미세하게 들뜬 유디트를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유디트 같은 고객을 만났던 건 행복한 일이다. p.71
┘
위의 글을 통해 그녀가 본인의 인생에서 자신의 뜻대로 권리를 행하는 순간이 바로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이라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부분이 위에 소개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터뷰 내용과 오버랩되는 장면 같다.
오늘 소개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제목과 아주 잘 맞는 '죽음', '자살'이 키워드인 책입니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님이 27살에 쓴 글로, 문학동네 작가상 제1회를 수상해 김영하 작가님을 대중에게 알리고 각인시켜준 장편소설입니다.
가끔 정-말 안 읽히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뚝딱 읽히는 책이 있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저에겐 뚝딱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주인공 '나'가 고객을 만나고 난 후 소설을 쓰는 내용으로 전개되어 "소설 속의 소설"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소설을 읽는 느낌이라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
예전에 김영하 작가님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하셨는데,
그 강연에서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란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소설 속에서 죽음, 자살, 살인, 불륜 등의 소재가 나와도 잠시 도덕적 판단을 내려놓고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며 문장을 읽어갑니다.
그래서 이 책의 '자살을 돕는 나'와 '자살하는 의뢰인'이란 무거운 내용이 나와도 흥미롭게 완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어떤 분들은 이 책을 읽고 영화 <기생충>을 본 것처럼 찝찝함과 역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마 자극적인 소재나 죽음이라는 주제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전 오히려 그 무거움과 찝찝함이 좋았는데 사람마다 느끼는게 틀리니
설명보고 괜찮다는 분들이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다독한 몽상가_文煐
마음에 드는 문장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내면의 충동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봄을 두려워한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겨울에는 누구나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흑백사진은 인간의 그늘을 보여줘요.
주름살과 주름살 사이에 담긴 한 인간의 인생을 잡아내죠."
"그들은 기억의 불멸을 꾀하느라 생생한 현재를 희생한다. 처량하지만 인간의 숙명이다."